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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9세기 제작된 창림사 무구정탑원기 발견
글쓴이 김철동

아래글 출처: http://beopbo.com/news/view.html?section=1&category=112&no=69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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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 등록이 안되므로 위 출처를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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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제작된 창림사 무구정탑원기 발견

제작연대·발원자 있는 완벽한 형태

추사가 모사한 ‘탑원기’의 원본

2012.02.28 17:37 입력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발행호수 : 1136 호 / 발행일 : 2012-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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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원기 전면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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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1786~1856)의 모사본으로만 전해져오던 경주 창림사 삼층석탑 무구정탑원기의 원본이 발견됐다. 제작연대와 발원자가 있는 완벽한 형태의 통일신라 금석문의 출현이라는 점에서 불교사는 물론 미술사, 서예사 등 연구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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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모사본 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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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미등 스님)는 2월28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화재청의 문화재기금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한국의 사찰문화재 일제조사 사업 진행 과정 중 용주사 효행박물관에서 ‘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國王慶膺造無垢淨塔願記)’(855년)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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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원기 앞면 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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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이하 탑원기)는 통일신라 46대 문성왕(재위 839~857)이 855년에 탑을 세우면서 납입한 금동판 형태의 발원문이다. ‘경응’은 문성왕의 휘(諱)이며 ‘무구정(無垢淨)’은 통일신라시대에 탑을 건립하는데 신앙적 근거가 됐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의미한다. 세로 22.4cm×가로 38.2cm의 판형에, 앞뒷면에 탑을 건립하게 된 배경과 발원 내용, 조탑(造塔)에 관여한 인물들이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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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영원사무구정탑원기동판-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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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는 1824년에 석공(石工)이 경주 남산 창림사 삼층석탑을 도괴할 때 무구정광다라니경과 함께 발견된 것이다. 당시 금석학에 조예가 깊던 추사가 이를 모사해 두었으며, 그 모사본은 ‘경주남산의 불적(慶州南山の佛蹟)’(1940년)에 수록돼 세상에 전하고 있으나 원판의 행방은 지금까지 묘연한 상태였다. 이번 조사에서 발견된 ‘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는 김정희의 모사본으로만 전하는 것과 내용, 체제, 서체 등이 모두 동일한 것이어서 크게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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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연구소에서는 ‘탑원기’의 금속성분 분석과 서체 분석, 금속제작기법 등을 관련 전문가에 자문했다. 그 결과 순동(Cu), 금(Au), 수은(Hg) 등이 검출됐으며, 이는 ‘탑원기’가 아말감수은기법에 의해 제작됐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체면에서는 탑원기와 김정희의 모사본이 자간(字間), 결구(結構) 등이 대체로 일치하지만, 탑원기에서 보이는 필획이 보다 더 정밀하고 생동감이 넘치며 결구가 뛰어나다. 탑원기에 사용된 글자 새김 기법은 글자의 윤곽을 따라 그리는 쌍구법(雙鉤法)이다. 이 기법은 ‘염거화상탑지’(844년), ‘황룡사구층목탑 찰주본기’(872년), ‘중화3년명 경통’(883년) 등 통일신라 동판에 글씨를 새길 때 자주 사용됐던 기법이다. 이외에도 금동판의 고른 연마와 도금을 한 후 작은 망치로 정(釘)을 쪼아 글자를 새기는 방식 등에서 매우 숙련된 장인의 제작 기술을 살필 수 있으며, 표면의 불규칙한 크랙(crack)은 현대 금속품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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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연구소 기자회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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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발견된 ‘탑원기’는 용주사 말사인 이천 영원사(靈源寺)에서 1968년 대웅전을 해체하던 중 기단에서 출토됐다. 이후 사찰에서 계속 비장(秘藏)하고 있다가 2011년 용주사 효행박물관에 기탁했다. 영원사는 안동 김씨의 원찰(願刹)로, 1827년에는 김조순의 시주로 중건됐다. 사찰 주변에는 김조순과 그의 아들 김유근의 묘소, 김조순의 아들 김좌근의 고택(경기도 민속자료 제122호) 등이 있으며, 1968년 영원사 중창 때에도 안동 김씨 종부의 시주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시기 김조순의 아들 김유근은 김정희와 석교(石交)에 비유될 정도로 돈독한 우정을 나누고 있었다. 이러한 친분을 고려해 보면, 1824년 창림사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무구정탑원기는 김정희를 통해 김조순 일가로 들어갔으며, 1825년 영원사가 중창할 때 대웅전의 진단구(鎭壇具)로 기단에 매납(埋納)됐다는 게 불교문화재연구소의 추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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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2.4cm×가로 38.2cm의 판형이 이보다 작은 창림사 삼층석탑 내부의 사리공(약 33cm×28cm)에 봉안했는지는 풀어야할 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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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재연구소는 이번에 발견된 ‘국왕경응조무구정탑원기’의 조사 내용을 정리하여 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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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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