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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운 사람
글쓴이 김철동

所思 소사

그리운 사람

靑靑江潭樹 청청강심수 - 푸르고 푸른 강가 나무

日夕增所思 일석증소사 - 밤낮으로 그리움만 더하네

所思在何處 소사재하처 - 그리운 이 어디에 있는가

乃在天一涯 내재천일애 - 바로 하늘 저 끝에 있지

天涯不可到 천애불가도 - 하늘 끝 도달할 수 없으니

相見無定期 상견무정기 - 만날 날 기약이 없는데

歲月忽云徂 세월홀운조 - 세월은 훌쩍 가버려

惻惻心傷悲 측측심상비 - 처량히 마음만 서글퍼지네

自我與君別 자아여군별 - 내가 그대와 이별한 뒤로

春木幾回滋 춘목기회자 - 봄 나무 몇 번이나 자랐나

夜雨滴空堦 야우적공계 - 밤비 빈 뜰에 떨어지고

寒燈獨坐時 한등독좌시 - 싸늘한 등불 아래 홀로 앉아 있는 때

倚枕思成夢 의침사성몽 - 베개에 기대 그리움이 꿈이 되었나

悠悠任所之 유유임소지 - 아득히 가는대로 내버려 두었네

千里一瞬間 천리일순간 - 순식간에 천리 길 가니

歷歷記路岐 역역기로기 - 하나하나 지나친 길 떠 오르네

宛如君相對 완여군상대 - 완연히 그대와 마주 앉아

披襟復陣辭 피금복진사 - 흉금을 터놓고 말하려 하는데

陳辭何所道 진사하소도 - 할 말 무엇 하려 하겠나

不言君己知 불언군기지 - 말하지 않아도 그대 이미 알고 있지

蘧蘧忽拊牀 거거홀부상 - 잠 깨면서 놀라 침상을 치니

詎意還在慈 거의환재자 - 어찌 다시 이곳에 있을 줄이야

如何夢能到 여하몽능도 - 어떻게 꿈에 도달 할 수 있는가

夢往身未隨 몽왕신미수 - 꿈은 가고 몸은 따르지 못하네

所以世間人 소이세간인 - 그래서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에겐

有此長別離 유차장별이 - 이런 기나긴 이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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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긴이의 글

위 글은 황산유고(2009년 양평군 발행, 도록 p433)에 나와 있다. 필자는 이 글을 읽고 깊이 생각하였다. 가장 절친한 벗과 헤어진 후로 그 벗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있다. 황산 김유근한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상당기간(3년?) 벗과 헤어져 있었을까? 그리하여 황산에게 어떤 절친한 벗들이 있었을까? 이를 인터넷상에 글과 완당전집, 황산유고 속에 글들을 종합하여 아래와 같이 추리(推理)하였다.

황산 김유근(黃山 金逌根 1785~1840),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이재 권돈인(彛齋 權敦仁 1783~1859), 동리 김경연(東籬 金敬淵 1778~1820)은 세교(世交)를 통한 유대(紐帶)와 이웃하여 살면서 희로애락을 함께한 이른바 부랄 친구이다. 완당전집을 보면 이 네 분의 자취가 곳곳에 묻어나온다. 물론 위 네 분에게도 친구들은 많다. 그러나 필자는 어릴 적부터 함께 어울렸던 석교(石交 : 돌처럼 변하지 아니하는 굳은 교제)를 말하는 것이다.

필자는 위 네 분에 관하여 벗으로서의 행적을 추적하였다. 그리고 위 글의 所思 소사[그리운 사람]는 추사 김정희로 추정하였다. 물론 위 네 분은 누가 더 친하고 덜 친한 것은 없다. 이분들의 우정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여러 흔적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필자는 황산유고 속에 나타난 우정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43세의 중년 나이로 운명(殞命)한 동리 김경연의 인천 묘역을 이재, 황산, 추사가 함께 찾아가서? 슬퍼하고 상명(牀銘, 황산유고 p488~489)을 남겼고 이후 삼총사로 남은 황산, 이재, 추사를 가리켜 석교(石交)사이라고 하신 황산의 서화정(書畵幀, 황산유고 p486~487)의 글을 통해서도 그 우정의 깊이를 잘 알 수 있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굴곡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황산과 추사도 이에 해당하는데 이런 소원(疏遠)한 때가 있었음은 유감입니다. 동리 김경연이 1820년 운명 하고 나서 1827년(순조 27)경부터 추사와 황산은 한때(3년 정도 아닐까 생각합니다.) 멀어졌던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 이는 두 분만이 알 것입니다. 가장 친한 벗과의 만남이 끊어진 상태에서 황산은 추사를 그리 위 하면서 고독을 씹어 삼켭고 이는 꿈속에까지 그 벗에 대한 그리움으로 묻어나고 있었음은 위 所思[그리운 사람]의 글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 후 당당히 우정을 회복한 두 분은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속담에서 보는 바와 같이 더 아름다운 우정으로 꽃피워나고 있었습니다. 이는 황산유고속의 추수백운도와 심지기란찬 그리고 1837~1840년(헌종 3~7)에 탄생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묵소거사자찬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황산과 추사, 두 분의 우정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는 다음의 글이 감동을 주고 있어 안내합니다.

보기: http://blog.joinsmsn.com/media/folderListSlide.asp?uid=isomkiss&folder=66&list_id=3840106 에서 3, 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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